[한겨레]‘리더’ 들고 돌아온 박흥호
아래아한글·나모웹에디터 개발
토종 소프트웨어 업계 ‘돌쇠’
이번엔 전자책 ‘깃든리더’ 내놔
IDPF ‘이펍3.0’ 규격적합성 1위 평가
비주류 ‘외인부대’ 꾸려 2년여 노력
음악·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지원
사용자 입소문 전세계로 알려져
“카톡 같은 플랫폼 성장” 자신감
토종 소프트웨어 업계의 ‘돌쇠’ 박흥호(51)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모바일 기기로 전자책을 보는 앱(리더) 시장이다. 1990년대 초반 토종 문서편집기 ‘아래아한글’ 개발을 총괄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와 당당히 겨뤘고, 1990년대 후반에는 토종 누리집 만들기 도구 ‘나모웹에디터’를 내놔 일반인들까지도 쉽게 자신의 누리집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름을 날린 그가 전자책 리더로 생애 세번째 도전에 나선 것이다. 쉰을 넘긴 나이에 서울 사당동의 허름한 사무실에 ‘깃든’을 설립해 2년 가까이 숙식을 하다시피 하며 개발한 ‘깃든리더’는 이미 애플·구글·아마존의 제품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를 받았다.
전자책 표준 규약(이펍·EPUB)을 제정하는 국제기구인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은 앱 장터 등을 통해 공급되는 전자책 리더들의 ‘이펍3.0’ 규격 적합성을 살핀 결과, 깃든리더가 1위로 평가됐다고 지난 12일 발표했다. 포럼은 270개 문항으로 전세계 전자책 리더들을 평가했다. 깃든리더는 모바일 분야 전체 1위, 데스크탑용을 포함해서는 3위를 차지했다. 아이오에스(iOS)판에서는 애플의 ‘아이북스’를 제쳤고, 안드로이드판에서는 구글의 ‘플레이북스’를 뛰어넘었다. 전자책 시장의 개척자 격인 아마존의 ‘킨들’도 제쳤다. 깃든리더가 ‘원조’ 간판을 단 것들을 모두 뛰어넘어, 이펍3.0 규격을 지원하는 세계 최고의 전자책 리더로 평가받은 것이다.
텍스트와 그림만을 표현하는 이펍2.0 규격과 달리 이펍3.0은 멀티미디어까지 지원한다. 이펍3.0을 지원하는 전자책 리더는 음악과 동영상까지도 즐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펍3.0 규격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 리더를 개발하는 게 쉽지 않다. 깃든리더도 평가 문항의 72.9%밖에 통과하지 못했다. 아이북스는 67.3%에 그치고, 코보 아이오에스는 59.9%에 머물렀다.
박 대표는 한글과컴퓨터 창립멤버로 아래아한글 개발을 총괄했고, 이후 독립해서는 나모웹에디터를 개발해 나모인터렉티브를 창업했다. 코스닥 상장 뒤 적대적 세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밀려나 10년 가까이 ‘가시밭길’을 걸으며 전자책을 즐겨 읽었는데, 이 과정에서 전자책 리더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는 먼저 피디에프(PDF) 리더에 매달려, 2년만에 피디에프 리더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펍3.0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어요. 그러다 이펍3.0 규격의 상당부분이 ‘W3C’가 만든 HTML5라는 걸 알게 됐어요. HTML5라면 나모웹에디터 개발 때 경험이 있거든요.” 2010년 그는 깃든을 설립하고, 이펍3.0 규격 전자책 리더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완전히 ‘외인부대’로 ‘개발팀’을 꾸렸다. 프로그램 개발 능력은 최고 수준인데 지방대·무명대 출신이거나 대학을 못나왔다는 이유로 기업에서 푸대접을 받고,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게임업체 등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강호의 고수’들을 모았다.
그후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깃든리더를 탄생시켰다. 깃든리더는 이미 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져, 영국 유명 대학의 출판부에 공급됐고, 대구경북과기대도 채택했다. 박 사장은 “포럼의 평가 결과 발표 뒤, 국내 굴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포함해 세계 유명 대학, 출판사 등에서 문의 메일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깃든리더를 카톡과 같은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전자책 이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다, 전자교과서 시장도 열리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전자교과서 정책이 중심을 잡고, 전자출판계도 바로 서야 한다. “국내에는 20개 정도의 전자책 스토어가 있는데, 리더가 다 달라요. 이 때문에 출판사들이 책을 낼 때마다 각 리더에 맞추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게다가 국내 북 스토어들은 이펍3.0 지원 리더를 채택하지 않아, 출판사들이 애플 북스토어에는 이펍3.0 규격을 지원하는 전자책을 올리고, 국내 북스토어에는 이펍2.0으로 올려요.”
출처: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